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스크랩] (57)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 (1)

샘물 퐁퐁 2010. 12. 19. 15:21

 

 

“주님 저는 거룩한 교회의 딸입니다”
순교성인 죽음 본받아 교회에 순명 다짐
1622년 시성 … 1970년 교회박사 선포

 

 

스페인 성지 순례를 갈 때 반드시 알아두고 가야할 성녀가 있다. 바로 아빌라의 테레사(Sta. Teresia Iesu de Avila, 축일 10.15)다. 이분은 동명의 소화 테레사와 구별하기 위해 대 테레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맨발의 가르멜회’ 창시자이자, ‘예수의 테레사’로 불려지는 성녀는 사실 ‘대 테레사’라는 이름에 못지않게 교회의 대 성녀이며, 큰 공적을 남긴 분이다.

테레사는 1515년 3월 28일, 스페인 아빌라에서 태어났다. 양친은 신심이 두터운 귀족이었는데, 자녀들을 모두 가톨릭 정신에 입각해 교육시켰다. 테레사는 그 영향으로 일곱 살 때부터 네 살 위인 오빠 로드리고와 함께 성인전을 즐겨 읽었다. 이때 순교자들의 장렬한 죽음을 보고 감동하여 교회를 위해 생명을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몰래 집을 나간 일도 있었다.

12세 때 어머니를 여읜 테레사는 성모상 앞에 꿇어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성모님이 자신의 어머니가 되어 달라고 기도했다. 이후 19세에는 성 히에로니무스가가 성녀 바울라와 성녀 에우스토치움에게 보낸 서간을 읽고 마침내 수녀가 될 것을 결심하고 아빌라에 있는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했다.

그녀는 처음에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맡아 모든 정성을 다해 소임에 임했다. 이 일을 통해 테레사는 말할 수 없는 감미로운 위로를 맛보았으며, 나중에는 자신도 돌보는 환자의 병에 걸렸으면 하고 원하게 될 정도였다.

기도가 허락이 되었음인지 테레사는 병석에 눕게 됐고, 이후 몸이 늘 허약했다. 그녀의 고통은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었다. 완덕을 열망했던 그녀는 세속화된 수녀원을 바라보며 영적으로도 큰 고통을 받았다.

그러던 중 테레사에게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 어느 날 성당에서 기도하다가 예수께서 매질을 당하시는 모습을 묘사한 상본을 보고, 자신의 냉담한 신앙을 깊이 부끄럽게 여겼다. 또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고는 스스로의 영혼이 처한 한심스러운 처지를 깊이 느끼게 된다. 테레사는 이 시점에서 영적으로 크게 변화되게 된다. 고해사제의 명령에 의해 기록된 자서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그때까지 생활은 나 자신의 것이었으나, 그후부터의 생활은 내 안에 계시는 예수의 생활이었다.”

‘나 자신 안의 예수의 생활’ 이것이 바로 유명한 테레사 신비 생활의 첫 출발점이다. 그녀의 학식은 깊은 것도 아니었지만 ‘영혼의 성’을 비롯한 그녀의 저서들은 지금까지 신비 신학의 기초로서 가톨릭 영성의 위대한 주춧돌이 되고 있다. 이는 하느님께서 심오한 신비계의 진리를 계시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대로 그녀가 기록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말하자면 테레사 안에 계신 주님이 스스로 적으신 책이기 때문이다.

테레사는 안으로는 영(마음)을 신비계로 몰입함과 동시에 밖으로는 가르멜회 개혁을 위해 노력했다.

그 이유로 테레사는 많은 곤경을 겪기도 했지만, 하느님의 뜻은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는 일이 아니다. 마침내 테레사의 개혁 노력은 빛을 보기 시작했으며 각처에 있는 여자 수도원은 물론 남자 수도원에까지 큰 자극을 주게 된다.

이는 테레사가 온전히 하느님과 일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하느님께선 테레사를 기꺼이 여기사 가끔 신비스러운 일이 그녀에게 일어나도록 허락해주셨다. 그런데 이러한 테레사의 신비 생활은 아름다운 장미꽃이 피는 길이 아니고 가시덤불이 가로놓인 험악한 길이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하신 주님의 말씀은 그녀에게 여실히 적용됐다. 고행, 겸손, 희생 등은 그녀가 평소에 지닌 십자가였다. 테레사는 그런 십자가를 열애했다. 이는 “주님! 당신을 위해 고통을 받겠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차라리 죽겠습니다”라고 한 그녀의 말이나, “테레사의 사랑을 받으려면 그녀를 학대하거나 또는 그녀에게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는 것이 제일 빠른 길이다”고 한 아빌라의 주교의 말에 비추어 알 수 있다.

테레사는 극기 수덕의 길을 걷는 도중 1582년 9월 2일, 67세에 중병을 얻어 병석에 눕고, 뒤이어 10월 4일 사랑하는 하늘의 배필을 만나 뵈러 영원한 길을 떠났다. 임종이 임박하자 그녀는 주님과 영원한 일치를 할 기회가 왔음을 즐겨 기뻐하며, 얼굴에 희색을 감출 수 없어 몇 번이나 “주님! 저는 거룩한 교회의 딸입니다”를 거듭 외치고 숨을 거두었다 한다. 1622년에 시성됐으며 1970년 교회박사로 선포되었다.


정영식 신부 (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출처 : 세포네
글쓴이 : 세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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