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4.

샘물 퐁퐁 2010. 7. 27. 13:12

 

                       순명의 길                                                                                                                                  

 

  

지상에서 천상의 삶 사신 위대한 성인
주님 당하신 고통 겪으며 완벽한 일치 추구
순명과 기도로 부·권력에 빠진 교회 일으켜

 

매 순간 순간이 중요하다. 밥 한끼 먹을 때도 중요하고, 잠잘 때도 중요하고, 공부할 때도 중요하다. 살아서 숨 쉬는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밥을 제대로 먹지 않으면 우리는 생명을 이어갈 수 없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지옥이다. 인생 공부를 제대로 매 순간마다 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마련해 놓으신 형성적 원리를 성취해 낼 수 없다. 알아야지 실천할 수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그 중요한 순간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는 그 모범을 프란치스코 성인을 통해 본다. 그 중 하나가 순명이다. 프란치스코는 늘 매 순간의 삶을 하느님 뜻에 따라 살았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 하느님께서 은총을 통해 보여주신 것, 하느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을 위해 절대 순명하며 살았다. 이러한 순명의 삶이야말로 프란치스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덕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또 다른 모범을 꼽으라면 기도 생활을 들 수 있다. 사실 청년기의 프란치스코는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늘 방탕하게 살았고, 세속적 행복에만 매달려 살았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기도하는 사람으로 돌변한다.

첫 번째 계기는 중병을 앓았을 때였다. 사람은 아프고 고통 받으면 모두 어린아이가 된다. 하느님께 매달린다. 어쩔 수 없이 매달린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한다. 프란치스코도 그랬다. 병으로 고통을 받으며 하느님께 기도하는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기도생활은 이처럼 시작이 중요하다. 일단 시작해야 하느님의 뜻을 파악할 수 있는, 더 큰 시야를 가질 수 있는 계기가 생기는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그러나 단순히 ‘시작’의 수준에 머문 것이 아니다. 한걸음 더 나아간다. 그때도 계기가 있었다.

기도생활을 시작하고 또 열심히 기도를 하다보면 내적이든 외적이든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하느님의 섭리에 귀를 기울이고 또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차원 높은 관상으로 가는 체험들이다.

프란치스코의 기도는 관상의 단계로 넘어간다. 이제는 철 없는 부잣집 도련님이 아니다.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프란치스코에게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프란치스코야,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 세워라.” 이 음성이 프란치스코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것은 앞에서 이미 보았다.

프란치스코의 기도생활의 경지는 점점 더 깊어만 갔다. 27세의 청년이 마태오 복음을 묵상한다. 예수님이 12사도를 파견하는 대목이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마태 10,8-9)

이 말씀은 평생동안 프란치스코 성인을 따라다녔다. 게다가 성경을 단순히 읽고 감상하는 차원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완벽하게 삶으로 실천해 낸다.

성경 말씀에 대한 관상에서 더 넘어가자 하느님은 이제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오상의 은총을 베푸신다. 오상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생긴 두 손과 두 발의 상처와, 창에 찔린 옆구리의 상처(요한 19,34)를 말한다. 프란치스코에게도 똑같은 상처가 생겼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예수님께서 당하신 똑같은 고통을 겪은 것이다. 이는 성인이 예수님과 완벽하게 일치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완벽한 기도는 이렇게 그리스도와의 완벽한 일치로 이어진다.

이러한 일치는 선종하는 모습에서도 잘 드러난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죽음을 앞두고 “땅에 뉘어 달라”고 했다. 땅의 품에, 자연의 품에 안기겠다는 참으로 낮은 모습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세계 형성의 관점에서는 예수님 다음 가는 존재라 할 수 있을 정도다.

부와 권력의 유혹에 빠져 들어가고 있던 교회를 청빈단순함, 순명, 기도의 완성을 통해 다시 세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교회의 초월적 변화를 이끌었고, 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켰다.

위대한 성인의 삶을 짧은 지면에 옮긴다는 것 자체가 송구스럽다. 그만큼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은 위대하다. 그는 지상에서 살았지만, 가장 완벽하게 천상의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신 분이다. 이 짧은 내용이나마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단 한 사람의 영혼에게라도 자극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영식 신부 (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http://blog.daum.net/duaworld/15714136

 

                                           

                                             

                                               태양의 찬가

 오 감미로와라 가난한 내 맘에
한없이 샘솟는 정결한 사랑
오 감미로와라 나 외롭지 않고
온 세상 만물 향기와 빛으로
피조물의 기쁨 찬미하는 여기
지극히 작은 이 몸이 있음을
오 아름다워라 저 하늘의 별들
형님인 태양과 누님인 달은
오 아름다워라 어머니신 땅과
과일과 꽃들 바람과 물
갖가지 생명 적시는 물결
이 모든 신비가 주 찬미
찬미로 사랑의 내 주님 노래 부른다

 

Brother Sun and Sister Moon
태양의 찬가 / Donovan

Brother Sun and Sister Moon
(original film version)
Brother Sun and Sister Moon,
I seldom see you, seldom hear your tune
Preoccupied with selfish misery.

Brother Wind and Sister Air,
Open my eyes to visions pure and fair.
That I may see the glory around me.

I am God's creature, of God I am a part
I feel your love awaking in my heart

Brother Sun and Sister Moon
I now do see you, I can hear your tune
So much in love with all that I survey

 

 

태양의 찬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Franciscus 1181~1226) 성인이 지은 것으로 성인이 ‘태양의 찬가’를 지은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l224년 어느 날 그가 알벨나 산에 들어가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친히 양손, 양발, 옆구리에  오상을 박아 주었다. 그것은 큰 은혜임이 틀림없으나 한편 어려운 시련이기도 하였다. 창끝에 찔린 것처럼 생긴 옆구리 상처에서는 쉴새없이 피가 스며 나와 속옷과 수도복을 적셨던 것이다. 그런 상혼의 아픔 외에도 심한 안질 때문에 그의 고통이 더욱 심했다.

그 후 그는 우골리노 추기경의 권유에 따라 산파비아노 성당 옆의 `숲의 성 마리아'라는 곳에 머물렀는데, 그는 죽기 꼭 l년 전 그곳에서 '피조물의 찬가' 또는 `태양의 찬가'라는 노래를 지었다.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인간들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 짐승들에게도 보내졌음을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참새들이 시끄럽게 지저귀며 주변을 날아다니자 "나의 형제들이여, 너희 창조주를 많이도 찬미해야 한다. 너희들은 씨도 뿌리지 않고 거두어들이지만 그 어른은 너희들을 보호하시고 다스리신다" 그때 참새들은 머리를 조아리고 성인의 말을 듣고 있었으며 축복을 받은 후에야 날아갔다고 한다.

이 ‘태양의 찬가’는 성 프란치스코가 지니고 있는 독특한 자연과의 일치를 통해 주님을 찬미하고 있으며 성인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가히 프란치스코 영성의 진수라고 말할 수 있다. 성 이냐시오는 자주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에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는 성 프란치스코의 ’태양의 찬가’에 매료되어 이 찬가를 통해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기"라는 이냐시오 영성은 바로 이 자연과 더불어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는 프란치스코의 영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노래에서도 그는 공기와 물, 흙과 불, 바람과 구름, 그 모두에게 자기의 우정을 알리고 있다. 이탈리아 종교시의 첫 기록인 이 노래는 오늘날까지 거듭 번역, 작곡되어 낭송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