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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스크랩] 노동하는 것을 배우기

노동하는 것을 배우기



노동에서 오는 기쁨 없이 살아가는 것은 즐거움이 없는 삶이다.

 

- 토마스 아퀴나스



사막의 동굴에서 고용주나 십장이 없이도 초기수도자들은 매일 많은 시간을 손노동으로 보냈다. 밭을 가꾸고, 바구니를 엮거나 만드는 일이었다. 이처럼 그들은 바오로 사도의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마라”(Ⅱ데살로니카 3,10)는 엄한 훈령대로, 필요한 물질적 요구들을 스스로 채웠다. 노동이 전혀 영적인 삶의 목적을 방해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축복으로, 일에 의해 치유되는 것으로, 지루함과 슬픔을 몰아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사막의 교부들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노동자체가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효율성이나 보상의 차원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된다. 폴 원장은 동료 은수자들 처럼 많은 시간을 종료나무 잎파리로 바구니를 짜는데 보냈다. 바구니가 동굴 안을 가득 채웠을 때, 그는 불을 질러 바구니를 다 태우고 나서 다시 시작하곤 했다고 한다.

 

이런 일화를 바보 같은 모습이라고 간주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초기 수도승들의 연대기를 보면 다른 의미가 있었다. 폴원장은 그런 행위를 통하여 “손으로 일하지 않고서 수도승은 그의 자리에 머물러 사는 것을 견딜 수 없으며, 거룩함의 정점에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영원의 빛으로 볼 때에 우리가 하는 많은 일들은 이와 비슷하게 바보짓으로 보인다. 우리는 내일이면 다시 더러워질 마루를 닦는다. 또한 어떤 사람의 마루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책을 쓰고 발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은 인간조건에 있어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노동(일)은 단지 매일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방법뿐만이 아니다. 또한 노동은 우리가 청구서를 갚는 방법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노동은 어떤 의미에서 이 우주에 인간의 독특한 자리를 표현해 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노동을 통하여 계속되는 창조사업에 참여한다. 또한 노동으로 물질과 맞서고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우리의 모습도 형성시켜 간다.

 

혼자서 하든, 대중의 갈채 속에 하든 노동은 온 마음을 다해 수행 할 때 오로지 자유롭게 주어질 수 있는 선물이 된다. 노동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육체와 정신이 개입되지만, 언제나 우리의 영혼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행복에 대한 모든 믿을만한 처방은 노동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매우 자주 행복에 관한 대중적 “광고들”은 노동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있다. 우리는 노동시간을 정확하게 족쇄같이 채우면서 행복을 휴가나 “여가시간” 때에만 가능한 것으로 예치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노동은 단순히 성가신 필수품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은 생계를 버는 수단이며 행복은 그 필수품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휴가를 즐길 때에만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개입된 과제, 일, 노동에는 더 깊은 행복이 있으며 우리의 존재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해 준다. 성인들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올바른 정신에서 생각해 보면 그러한 의미나 행복은 실제로 모든 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동과 거룩함


레오 톨스토이는 말년에 이 주제를 “도덕에 관한 이야기”들 중의 하나인 “한가한 사람들에게 하는 말”에서 다루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톨스토이는 특히 사회적 기대가 주는 부담과 영적인 갈망사이에서 느끼는 긴장에 대하여 자세히 말한다. 중년기에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리나」 등의 작품으로 유명해진 그는 이제 거의 자살을 생각할 만큼 절망 속에 있다. 특권과 안락의 삶을 누린 후 그는 이제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고 느낀다. 이 모든 것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성찰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행복의 추구가 거룩함에 대한 초대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거룩함이란 삶을 하느님의 규율과 일치시키는 것이고 톨스토이가 이해하는 한, 산상수훈은 이 거룩함에 대한 요약이었다. 그러나 그런 의미의 거룩함은 톨스토이가 보건대, 교회 혹은 수도원보다 노동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에서 더 발견된다. 그는 자신이 속한 특권계층과 그의 땅에서 일하는 농민들을 비교해 보면서 이런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아무리 고달파도 이 평범한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종일 일하고 삶의 선함을 기본적으로 신뢰하면서 밤에 잠든다. 물론 농민의 삶에 대한 이런 인식에는 감상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가한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농민들과 그들의 단순함, 신앙, 그리고 노동의 삶을 본받으려고 노력하면서 톨스토이는 그에게서 빠져나간 행복을 찾고자 했다.

 

“한가한 사람들에게...”에서 톨스토이는 한 이상적인 젊은 청년의 입을 빌어 자신의 이상을 표현한다. “나는 나의 전 재산을 포기하고 시골에 가서 가난한 이들 사이에 살 것입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일하고, 손으로 노동하는 것을 배우며, 내가 받은 교육이 가난한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눌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기관을 세우거나 책을 써서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형제로 살면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땅에서 단순한 삶을 시작했다. 농민들과 함께 들에 나가 일도 했다. 그는 “게으름이 아니라, 노동이 모든 인간 존재의 행복을 찾기에 있어 분리될 수 없는 조건”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톨스토이는 자신이 가르쳤던 이상을 결코 완전히 수용할 수 없었다. 그는 가족과 끊임없이 부딪쳤다. 또한 그 자신도 괜찮을 때에는 들에 나가 일했지만, 집에 돌아와선 비단 잠옷을 입고 잤다. 행복에 대한 그의 추구는 모호한 측면이 많았고, 82세에 죽을 때까지 갈라진 양심으로 괴로워했다.

 

올바르게 사는 것...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의 기반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러나 무엇이 올바른 삶을 구성하는가? 톨스토이의 생각에 의하면, 올바른 삶이란 단순히 외적인 도덕규약에 복종하는 것 그 이상을 뜻한다. 그것은 우리의 행복과 거룩함에 대한 추구가 한 곳에 모이는 조건, 궤도 위에 있는 것을 뜻한다. 그러한 조건은 보편적인 도덕률이 우리 영혼에 실제로 새겨질 때에 가능하다. 그러한 삶은 이 세계의 상식적인 지혜를 거부하는 삶이다. 톨스토이에 따르면, 그것은 매일의 삶에서 어떤 비전을 갖고 사는 것이다. 이기심과 경쟁보다 사랑과 연대를 나누며 사는 삶이다. 톨스토이 자신이 그가 그렸던 조화를 결코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는가? 노동, 행복, 거룩함의 올바른 관계에 대한 그의 생각은 성인들의 삶에서 더 넓은 지지를 받았다.



노동과 기도


노동의 필요를 발견한 것은 성인들이 아니었다. 창세기를 보면 마침내 하느님께서 불순종한 아담과 대면하신다.“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땀흘려 일하여 빵을 먹게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노동을 저주요, 우리의 타락한 본성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인들에게 도전은 필수품과 행복을 화해시키고, 노동과 매일의 과제가 축복 받으며 거룩한 삶을 향해 가는 길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었다. 14세기 독일의 신비가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처럼, “올바르기 위하여 사람은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해야 한다. 하나는 노동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기를 배워야 하고, 그 곳에서 하느님을 꽉 붙잡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노동을 다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며 다양한 행위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하는 모든 일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붙잡는 것”, 노동과 기도 사이의 조화를 찾는 것은 베네딕도 성인의 규칙으로 돌아가는 수도생활의 기본 특색이다. 서구 수도 전통의 창설자인 베네딕도 성인은 550년에 죽은 이태리인 수도원장으로서 매일의 생활이 기도, 공부, 그리고 노동으로 조심스럽게 나누어져야 한다고 규칙에서 말하고 있다. 이 세가지 중에 어떤 것도 나머지 것들보다 더 중요하거나 고귀하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 베네딕도에 의하면 수도자란 들에서 일할 때에도 초조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교부들과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손노동으로 살아야 참다운 수도자이기 때문이다.”

 

베네딕도의 사상은 단순한 표어, “기도와 노동”으로 요약될 수 있다. 두 행위가 함께 온전하고도 거룩한 삶의 보완적인 차원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표어이다. 그러나 베네딕도는 노동과 기도의 조화를 표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수도생활은 기도라는 거룩한 영역과 “세상적인” 노동행위를 인위적으로 갈라놓지 않는 상태를 목표로 삼는다. 기도는 그 자체가 하나의 노동­하느님의 일­이므로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손노동은 하나의 기도형태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어떻게 노동이 기도가 될 수 있는가? 무릎을 꿇고, 눈을 감고, 손은 얌전하게 포개는 것이 기도라고 생각하는 한 기도와 노동의 연결은 분명하게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기도의 기본적인 의미는 하느님 앞에 현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노동이 기도적인 특색을 가지게 되려면, 노동의 영(정신)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하면서 기도할 때처럼 우리의 온 마음을 집중시키고 하느님의 현존 앞에 머무는 그런 영이 있어야 한다.

 

설거지나 정원의 풀에 물주는 등 별로 정신적으로 집중할 필요가 없는 단순한 노동을 할 때에 이런 영을 가지는 것은 더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를 치거나 무거운 기계를 움직이면서 어떻게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의식을 유지할 수 있을까? 수도회의 관점에 의하면 모든 일은 나름대로의 선을 갖고 있다. 노동할 때 그 선에 대한 적절한 주의와 존중심을 갖고 한다면, 우리의 노동은 기도로 가득 차고 그래서 하느님이 그 안에 계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부주의하게 일의 선에 대한 존중 없이 하는 일은 기도의 성격을 잃게 된다.

 

이러한 주제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고전서 가운데 하나인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연습」에서 정교하게 표현되고 있다. 이 책은 17세기 불란서 가르멜 평신도 형제회 회원이었던 사람과의 대화, 서신에서 발췌하여 만든 책이다. 이 사람은 부활의 로렌조형제로 알려져 있는데, 중년의 나이에 오랫동안 군복무를 한 뒤 파리의 한 수도원에 입회하였다고 한다. 농촌출신이고,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으므로 그는 부엌일을 하게된다. 80세에 죽을 때까지 부엌에서 40년 동안을 냄비와 후라이팬 속에서 살았다. 살아 생전에 위대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사후에 출판된 책에 의하여 그는 당대 가장 위대한 영적 대가들 중의 하나로 인정된다.

 

그의 영성의 본질은 책의 제목에서 명료하게 찾아 볼 수 있다. 그의 영성생활의 방법은 단순하다. 항상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의식을 고양하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깨어 있음으로써 우리의 모든 행위가 거룩하게 된다고 믿었다. 즉 끊임없는 기도의 상태나 “하느님과의 대화” 상태에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기본적으로 하느님이 지금, 이곳에 하고 있는 일 속에 계시다고 확신하는 행위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에게 일하는 시간은 기도하는 시간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부엌의 딸그락 딸그락 하는 소리 속에서, 때때로 이것저것을 청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나는 마치 성체조배 때처럼 깊은 고요 속에서 하느님을 모신다.” “우리의 성화는 우리의 일을 바꾸는데 있지 않고, 지금하고 있는 평범한 일들을 하느님을 위해 하는데 있다. 하느님은 일의 위대함을 보시지 않고, 그것을 얼마나 사랑을 갖고 하는가를 보시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덧붙인다.

 

로렌조 수사의 가르침은 소위 우리가 생각하는 “거룩한 일”, 수도자들에 의해 행해지는 일과 “세상 속의” 사람들이 하는 현세적인 일 사이의 간격에 다리를 놓아준다. 실상 성인들도 “보통의 일”을 하고 산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교사, 간호원, 로렌조 수사 같은 부엌데기도 있었다. 비록 대부분의 시성된 성인들이 성직자이고 수도자였어도 또 다른 많은 성인들이 실제로는 온갖 종류의 일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일의 종류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자신이 그 일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 이라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주장은 옳다.

 

결국 “거룩한 일”이란 없는 법이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해를 끼치거나 정직하지 않은 일이 아닌 한 “영광스럽게” 변화될 수 없는 일이란 없다. 참으로 어떤 형태의 노동이건 간에 섬김이나 자선의 기회로, 기도의 때로, 혹은 아름답고 진실하며 생명을 주는 기회로 받아들이며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일들은 자주 주의를 끌지 못하거나 별로 특징이 없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을 풍요로운 은총과 사랑으로 하기 때문에 일터를 거룩한 자리로 변화시키는 사람들을 우리는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매일 만나는 성인들이다.

 

노동과 거룩함에 관하여 19세기의 예수회 회원이며 시인인 제라드 맨리 홉킨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이 하느님의 은총 안에 있고, 대죄로부터 자유로우면 모든 하는 일이 그 안에 죄가 없는 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기도만이 아니라, 노동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면, 모든 일은 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당신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그 분은 모든 것을 통하여 위대한 존재가 되신다.”

 

전설에 의하면 크리스토퍼 성인은 강을 건너는 여행자들을 등에 업고 날라다 주는 일로 생계를 꾸려 가는 거인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밤 그가 한 아이를 업고 있었는데 갈수록 무거워졌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당연하지요!” 하고 아이가 말했다. “당신은 온 세계를 업고 있었어요. 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당신이 찾고 있는 왕이지요!” 일상의 일이 지루하고 부담스러워도 하는 일이 우리가 찾고 있는 왕을 섬기는 일이라고 믿는다면, 얼마나 다르게 평범한 과제에 접근 할 수 있겠는가!

 

많은 성인들은 거룩함을 추구하면서 어떤 일들은 확실히 포기했다. 그것이 잘못된 일이었기 때문이다(로마군대에 복무했던 투르의 마르띠노 성인 등). 또한 도덕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일(영국재상이었던 토마스 모어의 경우)이나, 더 넓은 자리에서 일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베드로사도, “나를 따르라,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에 하던 일을 기꺼이 포기했다. 그러나 성인들이 표현했던 것처럼, 거룩함으로의 초대는 보통 하는 일을 단념하고 어떤 특별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일 안에서, 삶의 조건 안에서 거룩함을 발견하라는 초대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우리의 소명, 행복에 이르는 참다운 우리의 길을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부르심


“소명”이란 말은 라틴어에서 왔는데 호출, 초대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이 말은 단순하게 어떤 직업, 혹은 우리가 “하는” 어떤 일 따위로 자주 그 의미가 변질되어 사용되고 있다. 다른 한편 종교계에선 전통적으로 어떤 특별한 부르심과 같은 뜻으로 여겨진다. 즉 사제직이나 수도생활에 대한 부르심으로 통한다. 그래서 성소를 가졌다는 것은 신부, 수도자, 수녀가 되기로 결심하는 것이라고 이해된다.

 

그러나 성인들의 삶을 보면, “성소”의 의미는 상식적인 의미보다 한편으론 더 넓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더 좁기도 하다. 바오로사도의 말처럼, 우리들의 부르심이 궁극적으로는 거룩함 그 자체가 목적이며 단순히 종교적 서원을 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의미에서 더 넓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성소란 궁극적으로 개인의 문제이며, 어떤 특정한 개인에게 해당된다는 뜻에서 더 좁은 의미를 갖는다. 성소는 우리 각자가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도록 초대된 방식이다.

제라드 맨리 홉킨스는 우리 각자의 고유하고도 특정한 성소가 실현되고 드러나게 표현되는 과정을 묘사하기 위하여 “자기화”라는 단어를 발명했다.


모든 소멸될 것들은 한 가지 같은 일을 한다:

각자가 머물고 있는 내면의 존재를 다루는 일이다,

자아들­은 스스로 행한다. 나의 자아. 그것은 말하고 읽는다,

내가 하는 것이 나라고 울부짖는다: 그것을 위하여 나는 왔다고


물총새나 나무의 자기화작업은 더 본능적이게 마련이다. 토마스 머튼은 이렇게 표현한다, “나무는 나무가 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하느님의 뜻대로 되어 가는 것은 그분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분의 창조적 사랑에 ‘동의하는 것’이다. 하느님 안에 있는 것, 그러므로 하느님의 정수와 다르지 않는 이데아를 표현하는 것이므로 나무는 나무가 됨으로써 하느님을 닮는다.” 그러나 인간존재는 어떤가? 머튼은 대답한다: “나에게 있어 성인이 된다는 것은 나 자신이 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거룩함과 구원의 문제는 실상 내가 누구인가를 발견하는 것, 그리고 나의 진정한 자아를 찾는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소”를 어떤 특정한 일이나 생활방식과 같은 것이라고 여길 수 없다. 성소는 미리 맞춰진 옷을 입는 것이 아니다. 많은 성인들의 투쟁은 당대에 가능한 선택을 넘어 거룩함으로 가는 길을 만드는 것이었다. 안토니오는 사막에서, 베네딕도는 수도원에서, 프란치스꼬와 글라라는 철저한 가난이라는 그들만의 길을 찾았다. 그들 모두는 다른 사람들이 따르도록 길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들의 길은 기존의 방법들을 먼저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싹텄다. 무엇인가가 그들로 하여금 다른 길을 찾도록 만든 것이다.

 

샤를르 드 후꼬(1858~1916)는 퇴폐적인 불란서 기병대 장교로서 초기 삶을 시작했다. 후에 그는 알제리의 한 은둔소에서 사는 자신의 고유한 길을 발견했다. 그는 나자렛 고향마을 목수로서 꽤 오랫동안 살았던 그리스도의 삶의 중요한 부분을, 예수의 “숨겨진” 삶을 닮으려고 했다. 후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느님은 그분이 창조한 모든 영혼들이 그들의 온 존재를 다해 사랑하라고, 현세와 다음세상에서 그렇게 사랑하라고 부르신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들 모두를 거룩함에, 완전함에, 그분을 가까이 따르고 그분의 뜻에 복종하라고 부르신다. 그러나 하느님은 모든 영혼들이 똑같은 일로 그들의 사랑을 그분께 보여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으신다. 똑같은 사다리로 천국에 오르고 똑같은 방식으로 선을 행하라고 하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천국에 이르는 나의 길은 어떤 길인가? 어떤 삶으로 나는 나 자신을 정화시켜야 하는가?”

 

후꼬의 질문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어떤 종류의 일, 어떤 자리에서 나는 나의 진정한 자아를, 그렇게 되어야 할 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가? 머튼이 쓴 것처럼,“그 자리를 찾는다면 우리는 행복할 것이다. 그것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완전히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성서에서 부르심은 하느님과 노아, 아브라함, 야곱, 사무엘 등 신앙의 영웅들이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단순히 “여기 제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던 의미 있는 만남들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성서에서 이렇게 되풀이되는 응답들은 그냥 똑같이 “여기 있습니다!” 라고 소리치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이 중대한 순간임을 선포한다. 그것은 한 사람의 정체성 전체와 목표에 대한 감지가 응답 속에 녹아들어 어떤 초월적인 도전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러한 도전은 어떻게 우리에게 오는가? 모세에게 온 것처럼 불타는 덤불 한 가운데에서? 프란치스꼬의 경우처럼 무너진 교회 안의 십자가에서 “나의 교회를 다시 세워라”하고 말하는 소리 속에서? 많은 다른 성인들의 경우처럼 성서의 어떤 구절을 마치 그들 자신에게 말하고 어깨를 움켜쥐는 구절로 듣는 가운데에서?

 

성인들의 삶은 이러한 결정적인 순간들에 달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인들에게서 보여지는 특징은 그들의 부르심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았거나 나그네의 요구를 채움으로써, 혹은 현재 순간에 대한 어떤 도덕적인 도전을 받았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인들이 부르심을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들었고, 따라서 전적인 응답을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때가 올 때 ­오늘날 나의 온 정체성과 목표가 녹아있는 초월적인 도전의 질문에 대해 대답할 의지가 있다면­ 그러한 부르심을 알아차리는 것은 더 쉬워질 것이다.



육체와 영혼


도로시 데이에게 그런 질문은 이미 아이 때에 형성되고 있었다. 그는 1897년 뉴욕의 부르클린에서 한 자유 스포츠 기고가의 딸로 태어났다. 집에선 하느님이라는 이름이 거의 언급되지 않았으나, 어린 나이 때부터 그는 성인들의 삶에 매료되었다. 그는 병자들, 절름거리는 사람들,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성인들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또 다른 질문이 내 마음 속에 있었다, ‘왜 악을 처음부터 피하지 않고, 그것을 치료하는 일에만 매달려 있는가?’ 사회질서의 변화를 위해 일하는 성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노예들을 보살피기만 하지말고, 노예제도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성인들은?” 이런 질문들에 대해 고심한 끝에 그는 종교에 문을 닫고, 당대의 진보적인 정치에 희망을 두게 된다. 그의 친구들은 공산주의자들,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무정부주의자들로서 그들과 함께 다양한 좌익간행물이나, 반제국주의 연맹 같은 조직에서 일하기도 한다.

 

이같은 “역사”에 대한 흥분된 참여에도 불구하고, 도로시의 초년 삶은 외로움과 도덕적, 영적 혼동으로 가득했다.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를 동료들로부터 구분짓게 하는 초월에 대한 염원을 항상 가졌다고 한다. 어떤 친구는 후에 그가 좋은 공산주의자가 되기엔 너무 “종교적인”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도로시 데이도 나중에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도스토예브스키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의 말을 빌려 “살아오는 동안 내내 나는 하느님에게 사로 잡혀 왔다”고 말했다.

 

초월적인 것에 대한 이 염원이 결국 그를 가톨릭 교회로 가게 했다. 슬픔과 실망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그의 회심은 슬픔 때문이 아니라, 임신과 딸의 출산이라는 “자연적인 행복”의 경험으로 찾아왔다. 그는 즐거움과 감사의 충동을 너무나 크게 느꼈기 때문에 하느님께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하였다.

 

그러나 그의 회심은 친구들과 관습에 의한 남편(데이는 그를 이렇게 불렀다)의 이해를 엄청나게 뛰어 넘은 비약이었다. 불가지론자이며 무정부주의자였던 남편은 가톨릭주의를 경멸했고, 그가 종교를 받아들인다면 그들의 관계가 끝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데이는 “하느님인가 사랑인가를 택해야 하는 단 하나의 질문에 봉착했었다”고 쓰고 있다.

 

이런 고뇌에 더하여, 가톨릭이 되려는 그의 결정은 노동계층을 배신하는 것같이 비쳐졌다. 한편으로 그는 가톨릭교회가 가난한 이들, 서민대중, 이민자들의 교회라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 그의 진보적인 친구들과 도로시 데이 자신에게도 교회는 더 자주 부자들의 교회, 기존특권 그룹의 옹호자로 보였다.

그는 그의 초기신앙과 사회정의에 대한 투신을 어떻게 화해시켜야 하는지 몰라서 상심하고 있었다. 1927년 세례 후, 그는 5년의 외로운 시간을 방황 속에서 자신과 딸, 타말의 생계를 불확실한 자유기고가의 수입으로 지탱하면서 보낸다. 그러면서 “육체와 영혼을 이 세계와 다음세계에서 화해시킬 수 있는” 삶의 길을 찾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응답은 하늘에서 들려온 것이 아니라, 강한 불어의 억양으로 말하는 한 덥수룩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1932년 어느 날 데이가 그를 만났을 때, 그의 주머니는 팜플랫과 자료 따위로 불룩해 있었다. 때는 경제공황시기였고, 도로시 데이는 워싱턴에서 열린 공산주의자들이 조직한 실업자행진을 취재하고 막 돌아온 뒤였다. 여행은 그의 갈망에 위기를 더욱 부풀렸다. 워싱턴의 성모무염시태 성당에 가서 “내가 가진 모든 탈렌트를 동료노동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어떤 길이 열리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나서 뉴욕에 돌아가자, 곧 피터 모린이 집 문 앞에 도착한 것이다. 그는 불란서의 농가출신으로 55세였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녔고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복음을 행동에 옮기는 고유한 비전을 구상하였다. 그는 데이의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고, 서로 만나기도 전에 이미 데이가 그의 비전을 실제화 시킬 인물이라고 결정하고 있었다.

 

모린은 데이와 함께 복음서의 철저한 사회적 메시지를 수행하는 운동을 구상했다. 그들은 단순히 불의를 고발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질서, “노동의 철학”과 가난한 이들안의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것에 기초한 새 질서를 선포하는 것이라고 피터 모린은 말했다. 그들은 교회나 정부가 그러한 프로그램을 시행하도록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그들의 비전에 따라 오늘을 살기 시작할 것이며, “사람들이 선해지기가 더 수월한” 사회를 창조하는 일을 할 것이다.

 

얼마 지난 후에야 도로시 데이는 이 이상한 사람이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 만남과 이어 운동을 통하여 그는 나머지 생애 내내 거의 오십 년 동안이나 자신이 관여하게 된 일이라고 깨달았다. 가톨릭노동자 신문은 1933년 5월 1일 그 첫 호가 유니온광장에서 배부되었다(노동자 성요셉 축일에). 신문은 미국 전역에 있는 “환대의 집”에 중심을 두고 있는 운동의 도구가 되었다. 가톨릭 일꾼공동체들 안에서 전통적인 “애덕의 활동”(굶주린 이를 먹이고, 벌거벗은 이를 입히며, 집 없는 이에게 잘 곳을 주는)은 평화와 사회정의 활동과 결합되고 있다.

 

그래서 데이는 어린 시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었다. 사회질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성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 질문은 도로시 데이 자신의 삶이라는 대답을 요구했다. 가난한 이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섬기며, 불의와 싸우고 평화적인 대안을 창조하기 위한 작은 방법들을 시도하면서 그는 자신의 성소의 의미를 발견했다. 새로운 거룩함의 모형을 개발함으로써 데이는 행복에 이르는 자신의 길을 깨달았다.



더 깊이 들어가기


성소의 징표들은 보통 평범한 모습 속에 숨겨져 있다. 우리의 고유한 선물과 탈렌트 안에 우리 마음의 내적인 염원, 우리를 가장 온전히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감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성소를 분별해내는 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일생에 걸치는 도전이 여전히 남아 있다. 더 깊이 들어가고, 끝까지 충실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진로를 조정하는 도전이다. 참으로 많은 성인들은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가 표현했던 것처럼, “부르심 안의 부르심”을 발견하였다.

 

더 깊게 들어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또 다른 말은 “회심”이다. 우리는 보통 이 말을 죄로부터 돌아서는 의미로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성인들의 이야기에서 문제가 되는 회심은 자주 그들의 진정한 부르심을 찾는 것이다. 그런 회심이 일어나면, 수많은 무질서로부터 즐거움이 가득찬 해결책으로의 전환이 그들에게 주어진다. 삶이 평범함의 짐으로 무거웠지만, 이제는 타오르는 불길로 밝게 빛난다. 이미 종교적 서원으로 봉헌되었지만 갑자기 특정한 부르심의 발견으로 그들의 삶과 일은 새로운 모습, 그 전에 없었던 생기와 에너지를 갖게된다. 이러한 성소에 대한 깨달음이, “천국으로 가는 나의 길”의 발견이, 지루하고 귀찮으며 반발조차 일으키는 일을 행복의 길로 변화시킨다. 한 서양의 언론인이 마더 데레사가 죽어 가는 이를 보살피는 것을 보면서 “나라면 백만 달러를 줘도 할 수 없을 겁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을 때,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미에 대한 추구


유대인 심리학자이며, 대학살의 생존자인 빅터 프랭클은 자신이 나치수용소에서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예리한 연구결과를 글로 썼다. 「인간의 의미추구」에서 그는 자신이 의미요법이라고 명칭한 치료법의 유래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의미는 일, 가치, 결단, 투신에서 발견되지만, 의미가 없다면 인간의 정신은 말라죽는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는 삶의 의미에 대하여 묻기를 그쳐야 했으며, 대신 매일 순간순간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자신에 대하여 생각했다. 우리의 대답은 반드시 토론이나 묵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처신에 있어야 한다. 삶이란 궁극적으로 문제들에 올바른 대답을 발견하기 위하여, 그리고 각자에게 끊임없이 주어지는 과제들을 성취하기 위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미의 문제는 수용소라는 극한적인 조건 속에서는 특별한 긴급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결국 삶의 과제와 도전에 대답해야 하는 요구는 항상 우리 모두 앞에 놓여있다. 이러한 과제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톨스토이의 이야기에 나오는 지루하고 불행한 저녁손님들, 그들 자신의 대화에 갇히는 죄수처럼 된다. 반대로 도전을 받아들이고 일어서는 사람들은 공포스러운 상황 가운데에서조차 지속되는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1980년 12월 2일 이타 포드라는 젊은 메리놀수녀와 다른 북아메리카 교회여성들이 엘살바도르의 안보원에게 납치, 살해되었다. 9개월 동안 포드는 내란과 정부지원의 테러에 갇힌 피난민들을 위하여 일하는 선교사 팀의 일원이었다. 엘살바도르에서 가난한 이들 편에 서는 것은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말했듯이, 가난한 이들과 똑같은 운명을 지는 것이다, 즉 “사라지고, 고문당하며, 갇히고, 죽은 채로 발견되는 것”이다. 이타 포드와 동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해 초여름, 포드는 부르클린의 고등학생인 조카 제니퍼에게 열여섯 살 생일을 축하하며 편지를 보냈다:


지금 엘살바도르의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때를 겪고 있다. 많은 이상주의와 결단이 여기저기에서 탄압을 받는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가에 대하여 생각할 때, 복잡한 이유들이 얽혀있지만, 분명하고 단순한 가닥들이 보이기도 한다. 하나는 사람들이 살고, 희생하고, 투쟁하며, 죽기 조차할 수 있는 의미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16년을 살든, 60이나 90년을 살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은 목적을 주고 있다. 많은 의미에서 이곳 사람들은 행운의 사람들이다.

부르클린은 엘살바도르의 삶의 드라마에 끼어 들지 않고 있지만, 어디에 있든, 또 나이가 얼마이든 간에 어떤 진실한 것은 있다. 나는 네가 이곳에 와서 무엇이 너의 삶에 깊은 의미를 주는지, 너에게 활력을 주고 열중하게 하며 앞으로 계속 나아가게 해주는 그 무엇을 찾기 바란다.


그 누가 삶에 의미를 주는 것, 우리를 열광케 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게 하는 것을 찾고 싶지 않겠는가? 톨스토이에게 있어 행복의 열쇠는 이론적으로는 단순하나, 실천에 있어서는 붙잡기 어렵다. 그것은 일탈, 노동, 그리고 연대이며 이 모두를 사랑의 정신으로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거룩함의 의미는 꽤 단순하다: “당신이 해야 할 다음 일을 하는 것, 당신의 온 마음을 다해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하면서 기쁨을 발견하는 것.”

 

성인들은 노동에 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한편으로 그들은 삶에서 우리자신의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분명하든, 희미하든, 중요한 것은 다만 그 길이 우리자신의 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수행하는 모든 특정한 일이나 과제 속에 숨겨져 있는 거룩함을 찾겠다는 더 겸손한 훈련에 대해 가르쳐 준다. 예수회 사제이며, 신비가이고, 과학자였던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글을 보면, “그분 안에서 가장 살아있고 가장 육화 되어있는 모든 것 안에 계시는 하느님은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가 보고 만지고 듣고 냄새맡으며 맛보고 있는 이 세계로부터 격리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그분은 우리행동의 매순간, 순간적인 노동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그분이 내 펜의 끝, 내 삽, 내 바늘의 끝에 계시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한 획을, 한 줄을, 한 땀을 열심히 뜨면서 마지막 완성까지 계속한다면, 나의 가장 깊은 의지가 향하는 그 마지막 지점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성인들의 행복안내의 이 지점에 노동이 자리잡게 된다. 그러한 정신으로 살고 노동하는 것은 이타 포드처럼 자신들의 길을 발견한 행운의 사람들 중 하나가 되기를 열망하는 것이다. 행운의 사람들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래서 마지막에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 “여기 제가 있습니다” 라고 대답할 용기도 발견한 사람들이다.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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