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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스크랩] 깊은 영성의 `울림`이 나를 `울리다`

깊은 영성의 '울림'이 나를 '울리다'
한겨레 조현의 한국 기독교 120년 숨은 영성가 24명 이야기
입력 : 2009년 01월 09일 (금) 18:58:04 [조회수 : 2980] 김세진 (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 조현 기자가 '한국 기독교 120년 영성가를 찾아서'에 실은 글을 모아 <울림>을 펴냈다.(뉴스앤조이 김세진)  
 
"책을 쓴 지 세 달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아파요. <울림>을 쓸 때 엄청난 무게감에 눌렸어요."

<한겨레신문> 조현 기자는 종교전문기자다. '120년 기독교의 숨은 영성가를 찾아서'를 연재하고, 지지난해는 불교 고승에 대한 글 <하늘이 감춘 땅>을 써, '불교출판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불교계·개신교계·천주교계를 아우르며 그 자신이 구도자의 자세로 종교를 대하며 글을 쓰고 있다. 사회부·정치부를 제외하고 종교전문기자만 치더라도 10년. 글을 쓰는 일에 '어느정도 관록'이 붙었을 터.

그런 조현 기자가 글 쓰면서 무게감에 짓눌렸단다. 불교 고승에 관한 글을 쓸 때보다 열 배 이상의 데미지가 몸에 왔다. 고승들은 암자에 사는 등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해탈을 구하는 삶이다. 반면 <울림>의 기독교인 주인공들은 이웃과 민족의 십자가를 진 삶이었다. 맨발로 사는 그들 삶이 골고다 언덕을 걸어가는 것 같아서 감당이 안 됐다. 수준이 안 되는데 감당하려니 벅차고 지치고 아프다.

<울림> 주인공의 발자취를 밟는 취재를 다녀올 때마다 마음에 남는 게 있었다. 삶에 대해 근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깊은 울림이 있었다는 표현밖에 다른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제목이 <울림>이다. <울림>이라는 제목과 '우리가 몰랐던 이 땅의 예수들'이라는 부제를 손수 달았다.

 

숨은 영성가를 찾아 준 이현필 선생

 

공동체 운동이나 생명·평화, 대안적 삶에 관심이 있어 그런 분들을 찾아다니다가 이현필 선생을 알았다. 그의 제자들이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귀일원에 가보고 감명을 받았다. 2001년 보건복지부에서 모범적 복지시설로 뽑히기도 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언님(언니의 높임말)들은 정부에서 주는 월급을 모두 장애인들을 위해 다시 반납했다. 정신지체 장애인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설도 좋았다. 언님들은 하나같이 귀일원을 만든 이현필 선생을 그리워했다.

이현필 선생의 삶에 감동해 공동체를 찾았다. 그러다 만난 시골교회 임낙경 목사도 이현필의 제자였다. 이현필 선생의 스승 이세종 목사를 좇다보니 최승종·강순명·유영모·함석헌 선생 등의 삶을 살피게 되었다. 수레기어머니라고 불린 손임순 씨의 삶도 이현필과 맞닿아 있었다. 남다른 삶을 모색하는 사람들을 찾다보니 이현필 선생을 발견했고 그 주변으로 궁금증 을 확대해보니 많은 분들이 있었다. 어릴 적 광주광역시에 있는 귀일원 맞은편에 산 적이 있다. 이현필 선생이 작고하신 해에 태어났다. 고향도 같고 이모저모 인연이 깊다.

 

   
 
  ▲ <울림>/ 조현 지음/ 시작 펴냄/ 318면/ 1만 3000원  
 

숨은 영성가를 찾아 떠나게 한 ‘그 사람’ 채희동 목사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이 조현 기자에게는 채희동 목사였다. 함석헌 선생이 쓴 시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로 시작한 머리말에서 고백한 대로다. 조현 기자는 채희동 목사가 세상을 떠난 후 한국 기독교 100년 역사를 살았던 '그런 사람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채희동 목사가 죽고 오랫동안 마음이 빈 것 같았다. 채희동 목사처럼 순수한 영혼을 본 적이 없다. 평범함 사람이지만 순수하고 믿을 만한, 드문 사람이었다. 채희동 목사가 일 년에 네 번 펴내던 <샘>지를 지금은 여러 사람이 펴내고 있다. 그게 쉽지 않아 끙끙 앓는다. 교인이 20명이 시골교회에서 돈도 없는 사람이 이름도 없이 책을 힘겹게 만들었을 텐데 불평 않던 기억을 떠올리면 대단하다.

 

'기막힌 숨은 영성가들의 삶'

 

영성가들의 삶을 얘기하기가 간단하지 않다. 한사람 한사람의 삶을 생각하면 탁탁 숨이 막힌다. 권정생 선생은 평생 독신으로 사셨다. 수도자보다 더 수도자 같은 삶을 살았다. 평생 병고로 고통을 겪으며 동화를 썼다. 고통이 동화 <강아지 똥>, <몽실 언니>같은 영롱한 사리를 낳았다.

김교신 선생은 암울한 시대에 태어나 12살에 결혼하고 8남매를 낳았다. 자식을 부양하면서, 학교 교사로 손기정 같은 민족 지도자에게 영향을 주었다. 또 <성서조선>을 만들어 신앙과 민족을 동시에 깨웠고, 함흥 공장에서 노동자를 위해 헌신하다가 마흔네 살에 죽었다. 젊은 나이에 신앙·민족·학생·가족·이웃을 위한 삶을 거뜬히 해내는 것을 보니 기가 탁탁 막히다.  

이승훈 선생은 인간적으로 가장 존중할 만하다. 상민 출신으로 원망하고 저항할 수 있지만 품이 컸다. 자신보다 나이 적은 안창호․유영모 선생에게도 배울 줄 알고 자신을 낮출 줄 알았다. 3·1운동 등 큰일을 하면서도 뒤에서 이루고 나서지 않았다. 사실상 지도자였지만 천도교인 손병희 천도교 수장에게 대표를 맡겼다. 함석헌 선생도 이승훈 선생을 생각할 때 울먹일 정도로 삶이 깊었다.

 

'간디보다 앞섰던 한국의 공동체 운동'

 

공동체 운동을 한 것으로 유명한 간디는 1904년에야 피닉스 공동체를 꾸렸다. 그러나 규암 김약연 선생은 이미 1890년에 명동촌을 만들어서 민족공동체로 신앙·민족 운동을 했다. 1899년에 남강 이승훈 선생은 용동촌을 만들었다. 비폭력 저항운동인 3·1운동 이후에 간디가 비폭력 저항운동을 했다. 3·1운동이 중국의 5·4운동에 영향을 미쳤고 그것이 인도까지 퍼졌다는 학설도 있다.

 

'책에서 말하지 못한 숨은 영성가'

 

정동감리교회 탁사 최대원 목사는 유학자로 기독교 사상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전주서문교회 김인전 목사는 임시정부 초대 국회의장이자 유학자였다. 전주는 양반 지방이라 유학 사상이 발달해 예수쟁이를 핍박했다. 김인전이 목사가 된 이유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었다. 동학자이고 불교도였던 김구 선생이 김인전 목사를 만나 기독교인이 되었다.

 

'죽은 후에 알 수 있다'

 

<울림>에서 소개한 스물네 명의 영성가 중 살아있는 분은 없다. 평가는 삶 전체를 보고 죽은 후에야 할 수 있다. 누구나 완벽하지 않고 과실이 있지만 전 생애를 보고 평가해야 한다. 한 가지 잘하고 못한 것만 보고 전체를 평가할 수 없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쉽지 않다. 굳이 살아있는 분들 중 영성가를 꼽자면 이현필 선생의 제자들, 물질 욕심을 버리고 헌신적으로 사는 언님, 풀무학교 홍순명 선생, 변선환 선생의 제자들, 김약연 선생의 제자들이 이런 분들이 아닐까.

 

'기독교 영성=예수님성'

 

영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느냐는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조현 기자는 '영성은 예수님성이다'고 정의한다. 예수님의 인격·정신·가치관이 영성이다. 인류 역사는 나폴레옹, 이순신 장군처럼 '당하면 더 혹독하게 갚고 무찌르는 사람'을 '영웅'으로 생각했다. 예수님은 유일하게 정반대의 영웅이다. 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이 권능을 보여주길 바랐으나 예수님은 영웅주의에 사로잡히지 않고 보복대신 용서를 택했다. 보복이 되풀이되는 인류의 역사에는 고통이 끊이지 않는다. 인류는 세속적인 욕망을 따라 다툼과 갈등이 있고 당한 만큼 되돌려주는 보복심과 승리주의에 사로잡혔다. 그런 것들이 전부 인류를 멸망과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그렇다. 고통을 당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저들을 용서하소서’하고 말했다. 예수님의 영성으로 돌아가는 것밖에 길이 없다.

 

   
 
  ▲ 조현 기자가 김구 선생의 묘를 가리키며 '선조 기독교의 영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김세진)  

 

 

외세의 침략으로 들어와 외세에 맞선 기독교

 

3․1운동 당시에 기독교는 20만 명에 불과했다. 동학도와 유학도가 각각 200만일 때다.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

당시 최고의 엘리트인 김구·안창호·조만식 선생 등이 비주류 종교인 기독교를 택했다. 썩을 대로 썩은 불교나 유교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불교는 500년 동안 핍박받고 밀려났고 유교는 '상놈'과 '여성'을 차별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주지 못했다. 민족을 살리기 위한 종교로 기독교를 선택했다. 민족을 살리기 위한 것으로 종교를 택했기에 순수할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인의 삶이 순수하고 민족을 위해 일했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개인적인 욕망을 꺾고 민족을 위해서 헌신하는 마음으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현실에 참여했다. 감옥에 가는 것도 피하지 않았다.

본래 기독교는 17~18세기에 외세 군함과 같이 와서 거부감이 강했다. 그러나 기독교가 외세인 일본을 물리치는 데 앞장서자, 그 때부터 사람들은 '기독교는 우리 종교'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교회 팽창은 선구자들 뿌리 덕분

 

한국교회는 해방 이후에 줄기와 잎이 무성해졌다. 그러나 뿌리 없는 줄기와 잎은 없다. 해방 전 20만 명에 불과했던 기독교인들의 신앙적 모습이 이후 열매를 맺는 뿌리가 된 것이다. 당시에는 유교 전통으로 거부감이 심했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후레자식이라 불리기도 했다. 기독교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있었으나 기독교인 자체는 신뢰했다. '저 사람들은 속이지 않는다', '믿을 만하다'는 평을 들었다.

당시 기독교인은 막연한 호감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그것을 나중에 거둔 거다. 종교 외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지가 중요하다. 현재는 기독교인이면 더 믿지 않는다. 배타주의와 자기 이익만을 위한 이기주의로 치닫기 때문이다. 비호감을 주는 상황에서 20~30년 후에 줄기와 열매가 어떻게 될지 안 봐도 뻔하다.

기독교는 과거에 불의한 정치에 항거했으나 오늘날 개인적인 욕망과 성공을 위해서 더 거대한 정치와 손잡고 있다. 제대로 된 신앙인지 따지지 않고 거대한 교단, 거대한 집단, 거대한 교회에 속하고 싶어한다. 신앙이 개인적인 욕망 실현의 한 방편이다.

과거 한국교회의 평화로운 영성과 조화의 영성을 잃었다. 교회 간에 조화를 잃었다. 성공을 지향하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낳았다. 골목길 교회를 죽이고 대형마트 같은 대형 교회만 더욱 팽창했다. 교회 내적 불균형과 부조화가 드러났다.

사람들도 팽창과 갈증으로 마음의 평화를 잃었다. 성공과 팽창주의가 낳은 배타주의도 문제다. 기독교가 타종교에 보이는 배타적 태도가 비호감을 주고 거부감을 낳으면서 선교에 해악을 끼쳤다.

세계적으로 2000년가량 지구를 이끌어가는 리더는 기독교다. 강자가 아량을 베풀지 않으면 세계가 평화를 누릴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의 생각이 주변국 평화에 결정적이다. 이라크나 아프간, 쿠바에 전쟁이 벌어질지 티베트에 살상이 일어날지 등 강대국이 주변 국가에 영향을 미친다. 지구상에서 리드하는 종교는 기독교다. 예수님의 영성은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이지, 갈등을 부채질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 영성을 실현하는 종교가 돼야 한다.

 

 

마음을 울리는 <울림>의 사상가들
<울림>은 모두 7부로 구성된 스물네 명 사상가의 이야기다. 

'생명이 바로 예수그리스도다'(1부)는 자연과 생명을 소중하게 여긴 권정생·채희동·장기려 선생이 등장한다. '조선의 기독교에선 김치 맛이 나야 한다'(2부)는 유영모·김교신·변선환·이신 선생의 이야기다. 이 땅에 맞는 기독교를 뿌리박으려고 애쓴 사람들이다.

'동방의 빛을 밝히다'(3부)는 기독교를 통해 동양의 영성을 밝힌 김약연·김재준·최용신이 등장한다. 교육과 민족 계몽에 인생을 건 이승훈·이찬갑·유일한 선생의 이야기는 '동포여 깨어나라'(4부)에서 소개한다. '하늘의 문을 열다'(5부)는 사막의 교부들 같은 이세종·손임순·이현필 선생의 구도하는 삶을 볼 수 있다.

‘버림 받은 당신을 하늘처럼’(6부)에서 그린 삶, 나병환자나 고아, 부랑자 등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하나님처럼 여기고 헌신한 사람들의 삶에 가슴이 먹먹하다. 최흥종·강순명·이보한·방애인 선생이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산 모습에서 예수님이 그려진다. 

김익두·이용도·김현봉·대천덕 선생 이야기는 '성령의 바람이 분다'(7부)로 묶였다. 성령으로 내면이 변한 이들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실은 것은,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이자 신앙인인 우리도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위함이 아닐까. 

'기록자 조현'

"기록자일 뿐, 누군가가 말하듯 사상가도 구도자도 못 된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 <사기>를 만든 사마천도 기록자다.  

드러난 사람들, 성공하거나 돈이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을 조명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가치 있는 삶을 사신 분들 이야기를 드러내지 않으면 사라질 수도 있다. 만난 분들 대부분 다 돌아가셨거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분이다. 이런 분이 돌아가시면 아무도 없을 거다. 세속화․자본화된 사회에서 비출 분은 바로 그 분들이다. 진짜 필요한 분들이 이런 분들이다. 기록자로서 기자로서 기록할 것이다.

지혜를 가진 영성가와 수도자의 생각은 힘이 있다. 세상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그분들의 지혜로 해결하도록 세상으로 끌어나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최종편집 : 2009년 01월 13일 (화)

 

 

 

 

 

우리가 몰랐던 이 땅의 예수들
<한겨레> 조현 기자가 쓴 <울림>…근대 한국을 변화시킨 창조적 영성가들
입력 : 2009년 01월 06일 (화)  김종희 (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얼마 전 한국을 들르는 분에게 책을 좀 부탁했다. 신간 서적이라고 덜렁덜렁 주문하기에는 미국에서 한국 책값이 너무 비싸다. 그래서 한국을 들르는 분이 있을 때마다 책을 사달라고 한다. 한꺼번에 많은 분량을 주문하지도 못한다. 한국 책은 무게도 만만찮다. 이번에는 조현의 <울림>, 한완상의 <예수 없는 예수 교회>, 라즈 파텔의 <식량 전쟁>, 이렇게 딱 세 권만 부탁했다.

 

12월 31일 저녁, 2008년의 마지막 날을 오랫동안 기억하라는 뜻으로 부리는 심술일까. 차가운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불었는지 모른다. 열린 자동차 문을 닫으려면 용을 써야 할 정도였다. 길 위에 10초 만 서 있어도 귀가 뜯겨나갈 것 같았다. 그래도 며칠 전에 막 나온 따끈따끈한 책을 조금이라도 빨리 건네받을 수 있다는 설렘을 안고 눈 때문에 미끄러워진 도로를 씽씽 달려 공항으로 나갔다. 그렇게 받은 조현의 <울림>을 붙잡고 새해 첫날을 꼬박 보냈다.

 

   
 
 

▲ <한겨레신문> 문화부 종교 전문 기자 조현이 쓴 <울림>. 기독교 인물들만 다룬 <울림>에는 아주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아니면 쓰기 어려운 표현들이 많이 등장한다. 기독교 신심(信心)이 진하게 묻어 있다.

 
 

'울림'이라는 단어처럼, 깊은 뭔가가 그 속에 있는 것 같은데 겉으로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표현은 나를 힘들게 한다. 큰 제목 밑에 따라 붙은 작은 제목은 조금 덜 힘들다. '우리가 몰랐던 이 땅의 예수들.' 희미하게나마 뭔가 그림이 그려진다. 하지만 과장법이 조금 심하다 싶다. 기껏해야 120년 정도 되는 짧은 한국 기독교 역사 안에 '예수쟁이들'도 아니고 '예수들'이 얼마나 많기에 24명이나 고를 수 있었을까.

 

입 다물고 조용히 읽으면 될 텐데, 따지는 것도 많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따지자면, 300쪽이 조금 넘는 분량에 24명의 이야기를 담은 것도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조용헌의 <고수기행>과 <방외지사>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탓일 게다. <고수기행>은 300쪽 조금 안 되는 분량에 10명의 고수(高手)를, <방외지사>는 430쪽 정도의 분량에 13명의 방외지사(方外之士)를 두 권으로 나눠서 상세히 소개했다. 한 사람에게 30쪽 안팎은 할애해주었으면 좋으련만, <울림>은 한 사람에게 10여 쪽밖에 주지 않았다. 일간지 종교 면이라는 매우 제한된 지면에 고정적으로 취재해서 연재해야 했을 테니, 그 한계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아쉽다.

 

한 사람, 한 사람 읽어가면서 그런 아쉬움이 더했다. 이 정도 분량으로 다루기에는 각자의 신앙과 삶이 주는 '울림'이 너무 컸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이 책의 등장인물을 더 자세히 다룬 책들이 서점에 있으니 그걸 찾아 읽는 수고는 독자 몫으로 여겨야 할 것 같다. 애를 써서 찾아 읽는 만큼 울림과 보람도 크지 않겠나. 독자들이 느낄 아쉬움을 예상했는지 저자가 책 마지막 장에 자신이 이 책을 쓰는 데 도움 받았던 책 목록을 소개해주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 책 전체가 주는 울림은 그런 아쉬움을 뒤집어엎고도 남는다.

 

책장을 덮은 다음에는 '우리가 몰랐던 이 땅의 예수들'이 과장된 표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머릿속에 단단히 묶어놓고 24명이 조선 반도에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일일이 대조해보면, "아, 이 땅에도 예수를 사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예수를 믿은 데서 머물지 않고, 한완상 선생이 즐겨 쓰는 표현처럼 '예수따르미들'이 있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민족의 고난을 자기 몸 안에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백성의 고통 속으로 자기 몸을 내던졌다. 이들의 몸은 그냥 육신이 아니고 기독교 신앙이 제대로 녹아든 성육신(聖肉身)이었다. 이들의 가슴은 외래 신앙을 거부하고 우리의 토종 신앙을 갈구했고, 갇힌 도그마의 꺼풀을 풀어헤쳤다.

 

조금 길지만, 저자의 글 일부를 직접 인용한다.

 

"스물네 살 백옥 같은 처녀였던 방애인은 나환우의 썩어가는 손 위에 촛농 같은 눈물을 떨어뜨려 그들의 썩어가는 가슴에 새살이 돋게 하였고, 최용신은 자신의 병 때문에 살날이 며칠 남지 않은 날 새벽에도 새벽 기도를 마치고 머나먼 산골 마을로 찾아들어가 까막눈의 아이들과 아주머니들에게 '가갸거겨'를 가르쳤다.

이현필은 폐병 환자들을 돌보다 폐결핵에 걸렸다. 그런 몸으로 그는 걸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탁발을 하며 맨발로 눈길을 걸었다. 일제에게 나라를 잃고 동포들이 비탄 속에 죽어갈 때 많은 지식인과 종교인들이 제 살길만을 찾아 천황 제국의 신민(神民)임을 외칠 때에도 이승훈과 김약연, 김교신은 지옥 속의 동포들을 두고 어떻게 나 혼자 천국에 갈 수 있느냐며, 동포들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고초를 즐거이 감수했다.

또한 세계 최강대국들에 둘러싸여 1,000여 번의 외침을 받고 수많은 살육과 고통을 당한 약소국민의 패배 의식 속에서 '소신'보다는 오직 주류와 정통에 서는 보신주의가 판을 치던 이 땅, 오히려 본토보다 더 사대주의와 근본주의가 만연했던 이 나라에서 이용도, 김재준, 변선환, 이신은 '이 땅의 기독교'를 위해 고독한 선지자의 길을 기꺼이 택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세종, 유영모는 자치 유․불․선의 '도통'과 같은 체험으로 새롭게 하늘 문을 열었다. 일찍이 사막의 교부들에게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들의 경지는 수천 년 각기 다르게 자라온 동․서의 종교 사상이 극적으로 만나면서 터져 나온 핵폭발과도 같았다. 가히 세계 문명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일들이 이 땅에서 일어났고, 그런 인물들이 우리 곁에 머물다 간 것을 왜 그토록 몰랐을까. 백범 김구가 최흥종을 평한 것처럼 '화광동진(和光同塵, 성자의 본색을 감춘 채 중생 속에 살아감)'하기만 해서일까." 

 

   

 

 

▲ <울림>에 나오는 24명의 주인공 중 6명. 왼쪽부터 (1) 거지 대장이 된 애꾸눈 거두리 이보한. (2) 걸인과 고아를 섬긴 맨발의 성장 이현필. (3) 부흥의 기적을 이룬 불의 사자 김익두. (4) 우리 곁에 잠시 머문 눈물의 성자 방애인. (5) 조선식 믿음을 고한 예인 목사 이용도. (6) 교회 대신 교인 집 지은 중 목사 김현봉.

 

 

 

지금 우리가 믿는 예수라고 해봐야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코믹한 잣대를 갖고 이놈은 시원한 천당으로 올려 보내고 저놈은 뜨거운 지옥으로 내려 보내는 존재다. 인간이 지들 멋대로 만든 신학과 교리의 포승줄에 꽁꽁 묶여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존재다. 그가 밟고 걸었던 땅과 물, 그가 만지고 얼싸안았던 사람들은 모조리 거세되어 박제로 만들어진 존재다. 한마디로 '가짜 예수.'

 

웅장한 예배당 건물 속에 모여 열광하는 수만 명의 신도들 앞에 서서 미끈한 외모와 차려한 말재주로 가짜 예수를 팔고 있는 지금의 목사들은 언감생심 이 책 주인공들의 들메끈도 풀 길이 없다. 백성들의 옳고 그름을 머리로 따지기 전에 그들의 고통과 고난의 현장에 뛰어 내려간 '진짜 예수'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 손에 새겨진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몰랐던 이 땅의 예수'라고 제목을 달았지만, 사실은 알고 싶지도 않았고, 알아봤자 좋을 거 하나 없다 여겨서 애써 눈감고 외면했다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촌스런 무당에 비해 다소 세련되게 화장한 얼굴과 입술로 백성들과 민족의 이물리는 상처를 자신들의 먹고사는 수단으로 부릴 뿐인 종교 지도자들이 그걸 조장했고, 신도들이 거기에 맞장구쳤다.

 

저자의 말마따나 한국 교회는 맘몬(돈) 숭배와 성전․교권주의, 성장주의, 배타주의로 국민의 신망을 잃어가고 있으며, 희망을 찾을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잘 안 보일 따름이지 길이 아예 없다는 말은 아니다. 저자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며 지금도 귀와 온몸에 울림을 준 그들 삶에 답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의 발자취를 뒤따르는 당신의 삶이 바로 답이 되리라"고 했다. 우리 하기 나름이란다. 


 

   
 

 

▲ 저자가 1년 동안 회사를 휴직하고 나를 찾아 떠난 길. 달라이 라마가 머물고 있는 히말라야 산간 도시 맥레오드 간지에서 티벳 승려들과 함께. (<한겨레신문> 휴심정에서)

 
 

 

이 책을 쓴 조현은 <한겨레신문> 문화부의 종교 담당 기자다. 그와의 연은 <뉴스앤조이>의 출발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비롯했으니 8년이 조금 넘었다. 짧지 않은 세월을 곁에서 지켜본 바 그는 종교 관련 기사를 쓰는 일간지 기자들 중에 가장 믿을 수 있다.

 

구도자적 기자라고 불러야 적절할까. 그의 글에는 구도적 삶이 녹아 있다. 그는 관찰자가 아니라 참여자로 여러 수행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1년 동안 히말라야 오지를 뒤지고 다녔다. 세계 곳곳의 공동체들을 방문했다. 오지 암지와 토굴도 순례했다. 글거리를 찾으러 돌아다닌 것이 아니라 '나'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참 영성의 뿌리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글은 구도의 과정에서 얻은 열매다. 그렇게 쓰인 글에 믿음이 가지 않을 리 없다.

 

자기는 개신교에 가깝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불교에 더 가깝다. 불교에 대해서 우호적으로, 기독교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쓴다는 말이 아니다. 개인의 성향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기독교 인물들만 다룬 <울림>은 아주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아니면 쓰기 어려운 표현들이 많이 등장한다. 기독교 신심(信心)이 진하게 묻어 있다. 기독교에 대한 애정이 특심하기 때문이리라.

 

'성자필쇠(盛者必衰)'라는 말이 있다. 그가 보기에 불교는 어느새 귀족들과 왕족들을 위한 종교로 변했다. 유교는 왕족들과 양반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변했다. 이처럼 다른 종교들이 제 역할을 온전히 못할 때 기독교가 한국 역사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감당했다. 하지만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기독교는 불교와 유교보다 더 귀족적이고 왕족적이고 지배적이 되었다. 그는 개신교의 이러한 변질을 안타까워했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이 책에 담았다.

 

고맙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기독교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이 고맙고, 기독교 안에서 글쟁이로 살면서 여태 이런 책을 못 쓰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 '한국 기독교를 빛낸 올해의 인물'이라는 제목의 시상식이 있다면, 대상(大賞) 수상자가 되어 마땅하다. 하지만 그를 수상자로 선정할 안목조차 지금 한국 기독교에는 없어 보인다. 내가 대신 축복하자면, 이 땅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 귀한 하늘의 상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지어다!

 

 

 

 

 

▲ 조현 기자가 우리 민족 고유의 선도 수련인 기천(氣天)을 하는 모습. (<한겨레신문> 휴심산방에서)

 
 

 

 

김종희 / <미주뉴스앤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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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09년 01월 09일 (금)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비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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