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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글

벌거벗은 여인 - Lady Godiva

  

 

                                              Lady Godiva, 1898 / John Collier, Courtesy of the Herbert Art Gallery & Museum, Coventry

 

 

裸身으로 헌신을 실천한 여인 - Lady Godiva

 

11세기경 잉글랜드 중부지방의 코벤트리(Coventry)..

레오프릭 영주가 농노들을 대상으로 지나친 징세를 보다못한 사람은

농노의 대표도 민중 봉기의 우두머리도 아닌

레오프릭 영주의 부인인 '레이디 고디바'였습니다.

 

그녀는 남편인 레오프릭 영주의 과중한 세금청책을 과감히 비판하고

세금을 낮출것을 요구했지만

거만한 레오프릭 영주는 '너의 농노 사랑이 진심이라면 사랑을 몸으로 실천해라.’

 만약 당신이 완전한 알몸으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바퀴 돌면 세금감면을 고려하겠다.’라고

빈정대며 말을 했지요.

 

영주의 아내가... 그것도 알몸으로 스스로 걸을 수도 없이 말을 타고 숨지도 못한 체

영지를 도는 것은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였기에 영주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제의를 짧은 고민끝에 받아들이기로 하고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전라로 말등에 올라 영지를 돌게 됩니다.

 

 

영주 부인이 자신들을 위해 알몸으로 영지를 돈다는 소문을 접한 농노들은

마음에 감동하여 레이디 고디바가 영지를 돌 때,

 

누구도 알몸을 보지 않기로 하고 집집마다 문과 창을 걸어 잠그고

커튼을 내려서 영주 부인의 희생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이때 레이디 고디바의 나이는 겨우 16세였습니다.

 

영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고디바는

결국 백성들의 세금을 줄이는데 성공했고

그녀의 이야기는 전설로 남아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18세기 이후

코벤트리 마을은 고디바 부인의 전설을 관광 상품화 했고,

지금도 말을 탄 여인의 형상을

마을의 로고로 삼고 있습니다.

 

또한

고디바 부인의 전설은 여러 화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캔버스에 옮겨졌는데...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도 고디바 부인을 그렸습니다.

 

Lady Godiva, 1971 Dali

 

 

고다이버이즘(Godivaism)

   레이디 고디바의 이야기는 이후 학자와 역사가들에게 많은 논쟁거리가 되었다.

숭고한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그녀가 행한 알몸 시위가 너무나 파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관행이나 상식, 힘의 역학에 불응하고 대담한 역의 논리로뚫고 나가는 정치'를 고디바의 대담한 행동에 빗대어 '고다이버이즘(Godivaism)'이라고 부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벨기에 초콜릿 고디바 초콜릿의 이름이 이 고디바부인의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은 벨기에 초콜릿의 장인이며 고디바 초콜릿의 창시자 인'조셉 드랍'의 부인이 이를 적극 추천했기 때문이었는데 우아하고 고귀한
고디바 부인의 높은 뜻을 받들어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초콜릿을 만들고자 

  한 의지의 표현이었다고 한다.

 

                                                                              Lady Godiva 동상, 영국 Coven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