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하루 / 이기철
숨 쉴 때마다 나무들의 몸이 투명해진다
쫓아론 햇빛이 나무들의 몸 속으로 파고 둔다
“너에게 가고 싶다”는 말을 한꺼번에 토해놓고
허전해서 웃고 있는 산나리꽃
풀을 밟으면 내 발이 푸르러진다
떠내려 가는 풀잎은 머지 않아
이마가 흰 사람의 마을에 닿을 것이다
이제 그리움을 내려 놓아라
살다보면 눈부신 슬픔도 있고
보석의 아픔도 있다
풀잎이 햇빛 쪽으로 몸을 휘면
물은 산발치 쪽으로 흘러간다
산이 잠긴 단추를 푸는 동안
바람은 재빨리 더 작은 바람을 데리고
산 안으로 들어간다
아직도 못내려놓은 기다림이 남았는지
각시꽃의 얼굴이 붉어진다
잎새들이 햇빛 쪽으로 동아앉은 오전
산들이 흰 타월 같은 물을 내려보내
늦잠 깬 골짜기를 씻는다
살아 있는 것만이 누릴 수 있는
니 고요한 푸른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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