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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이를 위한 메세지

[스크랩]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누가복음 23장 26절 - 33절

  “저희가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로서 오는 것을 잡아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좇게 하더라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가니라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8절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오셔서 30세 때부터 33세 까지 세상에 육신을 입고 계시면서 복음을 전하시는 공생애를 하시고, 30세까지는 목수 일을 하시면서, 가난의 고통, 멸시의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이란 빈민촌에 살면서 목수 일을 하시면서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을 당하시었습니다.

  공생애를 마친 후에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의 동산으로 갈 때에 주님을 사랑하고 많은 은혜를 입은 여인들이 가슴을 두드리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라 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실 때에 세 종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1. 예수를 죽이려고 끌고 가면서 예수가 죽는 것이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로마 군인들과 바리새인들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달라고 소리를 지르던 군중들과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람을 죽이는 것이 너무 당연하고 또 자기들의 뜻을 이루었기 때문에 좋아 하는 사람들입니다.


2. 무덤덤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가 죽나 보다, 안됐다 하는 정도의 사람들입니다.

자기와 직접 상관이 없는 구경꾼들입니다. 

오늘날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 십자가를 대할 때에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3. 가슴을 치면서 울면서 애통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대하면서 가슴을 두드리면서 울며 슬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 한 사람에게 십자가를 지시고 가는  동안에도 주님은 뒤를 돌아보시면서 다정한 음성으로 나를 위로하여 주십니다.

“예루살렘 딸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예루살렘이란 말은 평화의 기초라는 말입니다.

주의 평화를 누릴 주님의 신부가 된 사람을 다정스럽게 부르시는 주님이십니다.

먼저 내가 예루살렘 딸이 되어야 합니다.  예루살렘 딸은 구원 얻은 성도를 말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가슴을 치면서 울면서 눈물을 흘리는 자가 예루살렘 딸들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십자가를 대할 때에 아무런 감각이 없는 사람은 예루살렘의 딸이 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나를 위하여 울지를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우리가 주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릴 때에 주님은 너희를 위하여 먼저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너희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였을까요?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 후에 부활의 영광으로 다시 살아 날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이미 가르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고 마귀 권세를 깨뜨릴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십자가의 고난만 보이지만, 주님은 부활을 이미 바라보시고, 마귀를 이기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서 영광을 받으실 것을 보시기 때문에, 지금의 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고통은 아무런 고통과 수치가 아니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울음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눈물의 종류가 많습니다.

기쁠 때에도 눈물이 나고, 슬플 때에도 눈물이 나고 서러울 때도, 억울할 때도, 고마울 때도, 괴로울 때도, 아플 때에도, 외로울 때에도, 통회 할 때에도, 감격 할 때에도 눈물이 납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통회의 눈물에 깊은 관심이 계십니다.

세상은 눈물을 흘려야 하는 괴로운 세상입니다.

주님도 우리 인생의 괴로움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신 일이 있습니다.

죽음을 보신 주님이, 장차 멸망의 환난을 보신 주님이 눈물을 흘리시었습니다. 

우리 인생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많은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 합니다.

나(너희)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라는 말씀은 특별히 통회의 눈물, 회개의 눈물을 많이 흘리라는 뜻이 있습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나를 위하여 눈물을 많이 흘려야만 장차 큰 은혜의 기쁨에 참례케 되는 것입니다.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이 말씀은 자녀들을 잘 돌아보라, 양육하라는 뜻입니다.

눈물의 어머니가 되어서 자녀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여 훌륭한 신앙의 사람으로 양육시키라는 뜻입니다.

여러 어머니들이여~  얼마나 자녀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였나요?

눈물로 키운 자녀, 어머니의 눈물을 먹고 큰 자녀들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지 못합니다.

성 프란시스코는 불량자였지만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 때문에 회개하고 돌아와 성자가 되었습니다. 자식을 눈물로 먹일 때에 자녀가 잘되는 것입니다.

 

  왜 자녀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여야 합니까?

   29절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이 말씀은 내가 낳은 자녀가 지옥 불에 들어간다면 차라리 자식을 낳지 않고 기르지 않았던 것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이러한데서 이루어진 말인 듯합니다. 

자식을 낳았으면 눈물로 기도하면서 신앙인으로 양육할 책임이 부모에게 있습니다.

지옥에 가는 자식을 둘 바에야 차라리 자식을 안 낳는 것이 더 좋은 일입니다.

 

  30절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어라 하리라”

  눈물이 없는 자, 회개함이 없이 살아 온 사람들, 자녀를 위하여 울며 기도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때에-

  그 때라는 말은 두 가지로 해석이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라는 뜻입니다. 

나와 내 자식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들은 얼마나 고통이 컸으면 차라리 산이 내 위에 무너져서 산에 깔려 죽어서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으리라는 생각에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성도들에게 하신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요한 계시록 6장 15절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예수를 안 믿고 회개를 하지 않고 눈물이 없던 자들이, 들림을 받지 못한 자들이, 7년 환난 때에 地上(지상)에 남아서 얼마나

 고생스러우면 이러한 말을 하면서 나를 죽여 달라는, 나를 가리워 달라는 말로 외치고 있겠습니까?

  우리들은 눈물로 예수를 믿으면서 나와 내 자녀를 위하여 회개 기도와 눈물의 간구를 하면서, 진실된 신앙인이 되어 내가  주 앞에 설 때에, 주님 재림 할 때에 들림 받는 성도가 되어 이러한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 나와 내 자녀가 되도록 눈물로 기도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31절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푸른 나무는 산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과 교제도 하는 살아 있는 믿음을 말합니다.

산 믿음을 가진 성도들도 고난을 당하고, 때로는 심판을 받아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는데, 하물며 마른나무인 죽은 믿음,

눈물이 없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 당할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눈물이 마른 믿음이 마른나무입니다.

회개함이 없이 자기 고집을 피우고, 자시의 생각대로 행하고, 믿는 믿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른나무는 불에 잘 타는 것이 특징입니다. 

우리는 마른나무의 신앙인이 되지 말고 항상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기도의 눈물, 회개의 눈물, 감사의 눈물, 기쁨의 눈물이 흐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면서 성도에게 하신 이 말씀을 명심하고 눈까풀에서 항상 눈물이 마르지 않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누명을 씌우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신지 40년도 못되어 주후 70년에 큰 환난을 당하여 모두 죽었습니다.

  로마의 디도 대장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성전은 불타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게 다 부서졌습니다.

나라를 잃어버리고 1945년 5월까지 나라를 잃어버리고, 흩어진 민족으로 나라 없는 백성으로 살다가 1940년대에 히틀러에게

600만 명의 사람이, 인구의 1/3이 학살당하는 일을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한 말이 응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나와 나의 자손에게 돌리라 한 말이 응한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려고,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 하신 말씀을 우리는 명심하여야 합니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를 위하여 울라”

날이 이르기 전에,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 큰 고통의 날이 이르기 전에 우리는 나와 내 자녀를 위하여 울면서 기도하면서 그들이 다 구원에 이르도록 하여야 합니다.


  예수 십자가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나와 내 가족도 위한 것임을 알고, 먼저 내 자녀를 위한 기도를 눈물로 호소하여야 합니다.


  지옥에 갔다 온 6세 먹은 어린이 간증을 들어보니 지옥에는 아이들도 많더라고 합니다. 그 아이의 부모가 예수를 안 믿고 불교를 믿던 집안의 아이들이라 합니다.

부모가 예수를 잘 믿으면 그 어린아이는 그 아이는 부모의 영을 따라 천국에 갑니다.

20세 까지는 부모의 영을 따르지만 성경에 말한 대로 20세 이상의 성인은 자기의 믿음을 따라 자기 영혼의 방향에 따라 좌우가 되는 것입니다.

 

  정리

   눈물의 기도를 많이 하여 나와 내 자녀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주님의 고난당하심을 슬퍼하기보다 먼저 나와 나의 자녀를 위한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나와 나의 자녀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자기를 따르는 성도들을 보시면서 마지막으로 성도들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나와 나의 자녀가 구원에 참례하도록, 울면서 눈물로 기도하며, 신앙을 지켜 나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

 

 

 


출처 : 은혜(恩惠)
글쓴이 : 은혜 (恩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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