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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찬양

[스크랩]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여라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여라

 

그리스도의 보혈의 가치를 매기려는 모든 시도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값으로 매길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주의 보혈을 “보배로운 피”라고 불렀습니다.

 

값으로 산것

 

그리스도의 보혈을 값으로 매기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값으로 매길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6잘20절과 7장23절은 우리가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그 값은 다름아닌 “보배로운 피”라고 부른 그리스도의 피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피에 있습니다. 이러한 생명을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죽음)를 값을 매기려는 것은 교만되며 억지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1:18-19)

 

성경에 보면 솔로몬이 모리아산에 건축한 성전을 봉헌할 때 그는 수많은 짐승을 잡아 제물로 드렸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언약궤가 성전으로 운반되기 전 제물로 바쳐진 양과 소의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셀수도 없었다고 합니다.(왕상8:5/대하5:6)

 

열왕기상을 보면 솔로몬은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화목제도 드렸는데 그때 제물로 바친 소가 2만2천 마리였고 양이 12만 마리였습니다. 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이만 이천이요 양이 십이만이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였는데”(왕상8:63)

 

더 나아가 우리는 레위인들이 가장 좋은 짐승들만 제사용으로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등 품’은 받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생각하시기에 이 수많은 소나 양무리의 제물이 어리석고 몰상식한 낭비가 아닌가?  양 한 마리나, 값산 양 한마리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문도 갖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원하셨다면 한마리의 양으로도 충분히 세상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예수)을 예표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였습니다. 도리어 값비싼 2만2천 마리의 소와 12만 마리의 어마한 양이 죽어야 했습니다. 내가 믿는 바로는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보혈의 가치를 보여 주신 것 이라 생각합니다. 도저히 보혈의 가치는 돈이나 물질로는 환산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였다고 생각 합니다.

 

구약에서 아무리 많은 짐승의 피가 뿌려졌다해도 그 피가 당신과 저의 죄를 사하지 못합니다. 속죄일에 짐승의 피가 몇일 동안이나 제단에서 끊임없이 흘러 내렸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그분의 아들을 희생의 죽음에 내어주실 때 영원히 흐를 샘을 여시리라는 약속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슥13:1)

 

우리는 쉬지 않고 흐르는 샘 이 샘에 날마다 우리의 죄와 질병과 슬픔들을 씻을 수 있습니다. 이 샘은 그 근원이 예수께로 부터 흘렀기에 사단과 그 졸개들 앞으로 항상 흐르르것이며, 우리가 이 샘을 높이고 노래하며 간구 할 때, 예수님의 보혈이 자비와 용서와, 치유와 건강과, 해방과 보호를 넘치는 은혜와 평강으로 호소할 것입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

우리는 갈보리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역사적으로 흐른 피로 믿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솟아나는 그 샘(피)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샘을 믿음으로 능력과 생명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사랑은 행동으로 표현하기 전에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보혈도 사용되기 전에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한 계시록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계12:11) 무기고에 쌓아둔 탄약은 무용지물입니다. 무기고에서 꺼내 탄창에 끼워 사용 할때만 그 위력을 발휘합니다. 사단을 이기는 자는 그리스도의 피와 그 피를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이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짐승의 피처럼 죽어서 응고 된것이 아닌, 오늘 날까지도 매우 신선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아직도 생명으로 살아있습니다. 우리는 구약에 그렇게 많이 흘려진 짐승의 피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피에 대한 가치를 크게 두셨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피의 제물은 실로 그양이 엄청 났습니다. 우리는 이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피의 의미와 가치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

 

완전한 제물

레위기에 보면 해마다 속죄일이면 속죄 염소를 광야로 보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잇습니다.(레16:10,21,22)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죄에 대한 심판과 저주를 친히 지시고, 더 이상 죄가 보여지지 않게 하시기 위해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로 들어가셨기 때문입니다.

 

속죄제는 인간이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이 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우리는 오직 보혈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화해가 회복 될수 있음을 압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제사를 드렸고, 안식일에는 번제를 배로 드렸으며, 큰 절기나 특별한 안식일에도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 모든 제사는 자신의 피를 쏟음으로 자신의 생명을 완전히 드린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는 완전한 제물이 되셨으며, 주님이 우리 대신 받으신 큰 고난의 뜨거운 불길이 그 제물을 태웠습니다.

 

매년 유월절기에 잡은 어린양의 엄청난 수도 보혈의 가치를 가르쳐 줍니다. 매년 유월절이면, 각 가정은 어린양 한마리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습니다.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의 말에 의하면, 어린양 한 마리로 최소 10명에서 최대 20명이 유월절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계산으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때, 애굽의 결박이 피 앞에서 끊어지던 역사의 밤에 죽어간 어린양의 수는 약 16만마리가 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합니다.

 

솔로몬 시대에 와서는 이스라엘 인구는 5,6백만명으로 늘었으며, 따라서 모든 사람이 유월절을 지키려면 약 40만마리라는 엄청난 양의 양들이 죽었을 것이다 합니다. 오늘날에도 이렇게 많은 양의 수가 제물로 필요하다고 한다면 가난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러나 감사하게도, 성경은 이제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5:7)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다행히 우리의 죄와 질병을 위해 15명당 한 마리씩의 양을 잡아 그 피를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유월절 어린양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께서 단번에 드린, 흠없고 완전한 제사를 받아 드리며 믿음으로 그분의 피를 하나님께 드리면 됩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2)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10:14)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분의 보혈을 매일 소리내어 기뻐한다면 사단의 나라는 무너지고, 그리스도의 복음의 나라는 바로 서게 될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이 예수님의 은혜의 보혈아래에 머물지 않으면, 그는 결코 죄로부터의 자유는 없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함을 믿는 다면 사단은 절대로 우리의 보호막을 뚫지 못 할 것입니다.

 

담대히 들어가라

구약의 대 제사장은  일년에 한번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 일 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히9:7) 대 제사장이 피 없이 지성소에 들어갔다면 즉시 죽었을 것입니다.그러나 속죄소에 피를 드리고 뿌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이 캄캄한 방을 비추었으며, 하나님은 그 속죄소 위에서 대제사장과 만나 주셧습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25:22)

 

예수님은 이러한 구약의 모형을 신약에 오심으로 인해 성취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 (히9:12)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이 자신의 보혈을 갈보리에서 흘리실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그 피를 보시고 우리의 모든 죄와 사망에서 까지 건져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그 흠없는 피를 흡족히 받으신 것입니다. 주님의 그 피의 제물외에는 그 어떤 제물도 이제는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당신과 나는 하늘 지성소에 언제라도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거룩하고 흠없는 피를 하늘 속죄물로 바쳤기 때문입니다. 자유함이든, 성령 세례든 간에 우리는 필요한게 있으면 어느때든 하늘 지성소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수없이 말씀 드리지만 예수님의 피로만 가능 합니다. 다른것은 절대 안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10:19,22) 우리는 에수님의 피를 마음에 뿌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뿌려진 피로 인해 양심의 악을 깨닫고, 예수님의 피만이 효혐됨을 아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안에서 결정되는 우리의 가치

예수님은 내가 곧...생명이니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요14:6)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는게 아닙니다.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 할찌라도 성경에 나타난 진리의 복음되는 교훈은 그런게 아닙니다. 기독교는 십자가를 져주신 예수님이 먼저지,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하는 제자들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으로부터 나타난 사랑이 먼저지, 교회에 대한 순종이 따름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세상의 온 인류에게 끼치는 은혜의 기쁨이지, 욕구를 억누루는 한 수도원의 종교단체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온 목적이 생명을 주되 더 풍성히 주기 위해서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주님은 지치고, 결박당하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삶을 찾아 위로하며 더욱더 넘치는 생명을 풍성히 주시려고 오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아담의 범죄인해 온 모든 저주와 죄에서 우리를 건지시고(구속) 더욱더 건지시기(영생)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고후1:10) 그 증표로 우리를 위해 새언약으로 맺으신 자신의 피를 흘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새롭고 산길” 을 통해서만 지성소로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히10:20) 마귀는 지불하라고 하지만, 주님은 거져 받으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외에 다른 것으로 나아가려는 시도는 예수님의 순결한 보혈을 더럽히게 되는 죄를 범하게 되는것이됩니다.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계3:4)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7:9-14)

 

오직! 이렇게 예수님의 보혈만을 높힐때 천국백성이 되기에 합당합니다! 아멘!

 

 

 

 

출처 :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 하자
글쓴이 : 로스트리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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